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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럽의 문화의중심 - 독일
작성자 김정훈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1-07-04 19: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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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734


Germany
덴마크에서 독일로 넘어오면서 기차를 이용했다. 그러데 기차가 배에 실려서 바다를 건너고 다시 육지에 정박하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가 정박장에서 배가 완전히 고정되었고 배안의 철로로 기차가 들어왔다가 배가 바다를 건너서 정지하면 다시 천천히 육지로 달려가는 것이다. 배안에는 없는 것이 없는 큰 유람선이었다.넘신기한 광경에 열심히 창문밖을 내다봤다.

베를린장벽-10여년전에 무너진 베를린장벽은 세계유일의 분단국 국민으로서 너무나 부럽고 가슴아픈 곳이었다. "우리도 통일하고싶다"라는 한글낙서는 가장 아름다운 문구로 보였다.장벽이 있던곳의 도로에는 표시를 해두었고 체크포인트찰리는 동서분단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분단의 원인부터 통일의 현장까지 독일통일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고 동독탈출당시의 기발한 발명품까지 전시해 두었다.

곰-베를린의 상징은 곰이다. 독일사람들은 예전에 베를린에 곰이 많아서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도시의 여러곳에는 댜양한 색깔의 곰들이 전시를 하고 있었고 특히 브란덴부르크문옆에는 세계 110개국의 대표들이 그 나라의 상징을 곰에 표현해 놓았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시대의 벽화가(활쏘는 장면) 그려져 있었다.

가스물-없는 돈에 슈퍼에서 물한병과 빵하나를 샀다. 외국에는 가스가 들어있는 물과 그냥 우리가 먹는 물이 있다. 하지만 점원에게 물어보면서 샀지만 내가 산건 사이다가스에 맹물맛이 나는 물이었다. 첨에 그런소리를 듣고 사이다처럼 톡쏘는 맛이있으니깐 괜찮을줄 알았지만 목말라 미칠지경이었지만 얼마 마시지 못했다. 코를 막으면서까지 노력을 해봤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여성-미국에서 영어공부를하고 독일로 여행온 30세의 일본여성을 만났다.그녀는 일자리를 찾는 중이었는데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file에는 그냐가 미국에서 개인그림전은 하면서 신문에 난 기사와함께 그냐가 그린 그림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작은 가게도 운영하고 있으며 가끔 그녀는 그림을 팔면서여행자금을 마련하고 있었다.

"10여년전 이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룩한 나라 독일. 그중에서도 수도인 베를린이다. 분단독일과 통일독일의 장면을 잘나타내주는 여기는 곳곳에 세계대전 당시의 흔적들을 찾아복수가 있다. 한국과 비슷하게 분할통치를 하다가 1962년도에야 베를린 장벽을 세웠고 1989년에 그 장벽이 허물어졌다. 어떤 건물에는 세계대전당시의 총알자국이 있고 베를린의 유명한 빌헬름교회는 그 당시 폭격의 흔적을 복원하지 않고 그래로 보존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각성인 듯 싶으나 자신의 도발로 일어난 전쟁의 뉘우침의 각성인지 아니면 패전에 대한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어쨌든 전쟁에 대한 뉘위침과 희생자의 애도의 표시로 기념상이 세워져 넋을 위로하고 있다.물각가 다른나라의 도시들 보다 싿. 특히 맥중의 본고장답게 물값하고 비슷하다. 진짜로 술을 물같이 마실수 있는곳이다. 어떤 베를린 벽에 한국어로 "우리도 통일하고 싶다"라고 누군가 적어놓았다." - 2002.7.9-

벨트-기차역에는 사람이 타는 에스컬레이트는 없지만 짐가방을 이동시킬 수 있는 컨베이벨트가 있었다. 무거운짐을 가지고 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다는 점과 큰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함께 갖추고 있어서 무조건 편한 것만 원하는 우리나라에게는 큰교훈이었다.

하이델베르크의 성밖에는 그다지 볼 것이 없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대학교를 찾았다. 학생들의 치외법권이었던 학교에서 자치적으로 학생들을 벌주고 관리하던 곳으로 지금은 그저 박물관처럼 역사의 흔적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은 강하였다. 특히 자신이 학교 학생감옥이 다른 나라사람들에게는 관광지로 자리잡았기에 보물을 가진자들처럼 자랑스러웠다.

"독일이 두 번째 도시다. 여기서 볼거라고는 옛성과 다리가전부인 것 같다. 구슬도뀅야 보배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우산과 비옷이 있어도 보관소에 맡겨서 비를 홀딱 다 맞았다. 하이델베르그 대학교는 예전에 학교자체에서 학생들을 감옥에 가두고 벌주는 대단한 힘을 가졌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감옥가는걸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지금은 경찰들이 학교안으로는 진입을 못한다고 하니 한국과는 조금은 다르다. 철학자의 길은 고성과 다리를 한꺼번에 볼수 있는 장소이다. 산위로 길이 나있어서 조금은 좋은공기를 마쉬면서 갈을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도 한국사람들은 마니있다." -2002.7.10-

라인강 고성-우연히 기차에서 잠을 자기위해서 쾰른으로 올라가면서 라인강을 따라 열차가 운행되면서 고성들을 보게되었다. 강을따라 열차가 움직여서 그런지 강언덕의 많은 고성들은 옛 주인들의 명성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더 높은곳에 더 크고 멋지게 지어져있다.운이 좋았던 것 같다.


독일친구집-호주에서 만난 독일친구집에 갔다. 시골이라서 기차를 여러번이나 갈아탔다. 당연히 시골기차라서 유레일패스 time table에는 나오지도 않는 곳이었다.albstadt라는 작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자취를 하는 독일친구는 사실 기말고사 기간이라서 조금은 미안하였다. 여행중에 했던 빨래를 말리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드라이어를 찾느라 고생했지만 그냥 비맞은 빨래를 다시 나의 베낭에 넣고 여행했다.하지만 너무나 좋은 친구였기에 편하게 그집에서 쉴 수가 있었고 친구들의 친구들은 금새 친하게 되었다. 마침 마을의 자전거경기 전날이라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밤에는 마을의 뒷산에서 모닥불도 피우면서 거하게 한잔했었다.나도 라볶기를 해줬다.

다하우수용소-난 뮌헨에는 세가지 목적으로 갔었다. 하나는 나치의 잔인성을 나타내던 다하우수용소. 이곳은 유태인뿐만아니라 독일인들의 수용소로서 뮌헨에서 기차로 2시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그당시의 건물들은 거의 없어지고 터만남았지만 입구에 있는 "Nerver Again"이라는 말은 나의 가슴에 깊이 파고 들었다. 옛막사를 개조해서 많은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전시관에는 세계대전의 발생원인과 왜 나치가 유태인을 싫어했는지가 상세하게 설명되었다.

독일군인-뮌헨의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군가를 부르며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다 9개월간의 군 복무기간을 마치고 제대하는 날이었다. 거리의 시민들은 제대한 사람들의 옷에다가 싸인을 해주며 축하해 주었고 별 난동없이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한국군인들이 26개월동안 낮은 월급으로 집에도 잘 못간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난 그들이 부러웠다.

뮌헨에서는 "the tent"라는 camping site에 묵었다. 비록 내가 텐트가 없었지만 그곳에는 큰 텐트에 사람들을 수용시키고 무료로 담료와 깔개를 제공해주고 아침도 준다. 저렴한 가격이라 외곽에 위치하여 차비가 들 수 있지만 걸리지만 않으며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부엌이있어서 식사는 용이하다.

맥주로 유명한독일에서 매일 다른 종류의 맥주를 마셨다. 진짜 맥주를 물처럼 실컷 그리고 싸게 마실수 있는 것이 여기 독일이다. 특히 물어서 찾아간맥주홀에서는 악단원의 부인이 한국인인 관계로 아리랑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독일박물관-뮌헨에는 독일박물관이있다. 세상의 유명한 과학자들의 업적과 원심력,구심력,마찰력등등 과학의 기초들에서부터 우주선까지 섬세하게 만들어진 기구들을 통해서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실험해 봄으로서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만드어져 있었다. 또한 다리를 만드는 방법, 실을 짜는 방법, 환경등 모든 방면에 걸쳐서 볼거리와 정보를 제공해주었다.역시 이들이 세계대전을 두 번씩이나 일으킬정도의 국민적 저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독일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독일친구집에서의 3일은 이번여행에서 가장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남을 것 같다. 당연히 방값도 아꼈다. albstadt라는 작은 마을이지만 burg hohenzolllern 이라는 성도 가고 힘들었던 여행에서 잘 쉴수가 있었다. 뮌헨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짧아서 아쉽다. 보고싶은것들이 너무나 멀리 있어서 차안에서의 시간이 넘 아깝다. 하지만 독일 박물관에선 한국과학선생님이 배워야할것들이 전부다다. 그리고 dachau수용소는 히틀러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과 수용시설애 대해서 잘 알수가 있었다. 물가가 독일에서 가장 비싸서 그런지 가슴깊이 느껴진다." -2002.7.15-

봉지라면-며칠째 밥을 먹지 못하고 빵 몇조각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던 나는 슈퍼에서 구입한 일본라면으로 봉지라면을 시도해보았다. 당연히 뜨거운물이 필요했기에 기차에 탓을 때 용기를 내어서 식당차에서 먼저 뜨거운물을 팔 것을 부탁했다.그들은 나의 행동이 이상했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다가 라면을 보여주면서 뜨거운물만 달라고 몇번 말하자 그냥 건네주었다. 다른사람에게 냄새가 날까봐 객차사이에서 혼자 먹는 봉지라면서 굶주린 나에게 정말로 눈이 날정도였다.

퓌센성-뮌헨에서 3시간정도 걸려서 퓌센이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역시 한국사람들의여행지라서 그런지 한국인들이 진짜로 많았다. 디즈니랜드성의 밑그림이 되었던 노인슈반타인성은 흔히 퓌센성이라고도 불린다. 사실 퓌센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성밑에까지 가야하는 번거러움과 기차시간이 2시간 간격이기 때문에 시간사용을 잘해야한다.성까지 마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걸어가는 것이 더 재미있다.또한 산과 산사이에서 바라보는 성은 정말로 엽서의 한장면이다.

유럽국가들 중에 가장 내가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인 독일은 사람이 살기에는 정말로 좋은곳이다. 발달된 교통과 도시문화, 시민의식은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며 우리나라와 같이 가을엔 이쁜단풍이 산을 뒤덮는 곳이다. 주말이면 호수에서 가족들과 함께 수영과 소풍을 즐기는 이들의 삶이 부럽기만 하다.독일인들의 성격또한 맘에 든다. 나치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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